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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3

을사사화 을사사화는 1545년(명종 즉위년) 조선 왕실의 외척인 대윤인 윤임과 소윤인 윤원형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림의 화옥으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입니다. 배경중종은 제1계 비인1 장경왕후 윤 씨에게서 인종을 낳고, 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 씨에게서 명종을 낳았습니다. 이들 두 계비는 같은 파평 윤 씨인데,,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문정왕후의 아우 윤원형이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임과 윤원형은 같은 종씨이면서 서로 국구가 되어 세력을 잡으려고 일찍부터 반목하여 세간으로부터 윤임은 대윤, 윤원형은 소윤이라 불렸습니다.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게 되자 윤임이 득세하여 사림의 명사를 많이 등용하여 이언적·성세창·유관 등을 정부의 대관으로 임명하는 등 일시 사림은 그 기세를 회복하였습니다. 당시 뜻을 얻지 못한.. 2024. 5. 7.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 음력 11월에 조선에서 중종의 주도로 홍경주, 심정, 남곤, 김전, 중종 등이 조광조, 김식 등 신진사림의 핵심인물들을 몰아내어 죽이거나 귀양 보낸 사건입니다. 조광조 등의 세력 확장과 위훈 삭제에 대한 불만이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신진 사림파의 급진적인 개혁정책 역시 그들을 지지하던 정광필, 안당 등의 반감을 사면서 지원받지 못하였습니다. 고형산, 심정, 남곤, 홍경주, 심정 등은 후궁과 궐내 세력을 이용하여 조광조 일파의 제거 여론을 조성하여 제거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희생된 인물들은 후일 기묘명현으로 불리게 됩니다.중종은 당시 승지들도 모르게 대소신료에게 갑자기 입궐명령을 내렸고, 정광필, 남곤, 김전, 심정, 홍경주, 안당 등은 갑자기 소환명령을 받고 경복궁.. 2024. 5. 7.
무오사화 무오사화는 1498년(연산군 4년) 음력 7월 훈구파가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사건입니다. 사화가 일어난 1498년이 무오년이기에 "무오사화"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사초가 원인이 되었다 하여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도 합니다. 조선시대 4대 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입니다. 15세기 후반에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중용하였는데 이에 훈구파는 조정에 대거 진출한 사림파와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훈구파는 성종실록 편찬에 원고가 된 사초(史草) 중에(史草)중에 《조의제문》의 불충함을 명분으로 하여 연산군의 지원에 힘입어 사화를 일으켰습니다. 《조의제문》은 지난 계유정난(1453) 때(1453) 있었던 세조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기에 격노한 세조의 손자 연산군은 관례를 깨고 사초를.. 202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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