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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조 (1)

by fdadfasdf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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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활동

 

정치활동 초기와 전제 개혁

 

부왕 세종의 병환과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세종의 특별 지시로 그는 정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1439(세종 21) 7월 종친(宗親)들을 관리하는 종부시 제조(宗簿寺提調)가 되었습니다. 이후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를 설치하면서 전제상정소 도제조(田制詳定所都提調)가 되어 농지를 실제 농민에게 부여하는 토지제도의 분배 재개혁을 주관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종 재위기간 중 치평요람(治平要覽역대병요(歷代兵要의주상정(儀註詳定) 등의 서적의 편찬과 찬술을 감독하였으며 중국의 운회(韻會)를 훈민정음(한글)으로(한글)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명나라와 천축국에서 불서들을 구하여 불서들을 훈민정음으로 번역,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1440(세종 22)에 세종이 규표(圭表 : 천문관측기계의 하나)를 바로 잡을 때의 세조와 안평대군 및 다른 유신들에게 명하여 삼각산 보현봉(普賢峯)에 올라 해지는 곳을 관측하게 하였습니다. 돌길이 위험하고 또 불측한 벼랑이 내려다 보였으므로 안평대군 이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눈이 어지럽고 다리가 떨려서 전진하지 못하였으나 세조만은 유난히 걸음이 나는 듯하여 순식간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보는 이가 모두 탄복하여 `따를 수 없다' 하였습니다. 늘 소매 넓은 옷을 입었으므로 궁중 사람들이 모두 웃으니 세종이 이르기를, "너와 같은 용력 있는 사람은 의복이 이만큼이나 넓고 커야만 될 것이다."라고고 하였습니다.

14416월 세종의 명으로 치평요람(治平要覽)의 간행, 인쇄를 감독하였습니다. 144310월 말에는 토지의 측정에 참여하였습니다. 1443(세종 25) 11월 전제 상정소(田制詳定所)가 설치되자 도제조(都提調)가 되었다가 1444년 전제소 제조(田制所提調)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1445(세종 27) 진양대군에서 고쳐져서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개봉되었습니다.

 

문종의 대리청정

 

세종이 병들고 세자였던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자, 그는 동생인 안평대군과 함께 신하들에게 세종과 문종의 교지를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형제는 당시 조정 중신들이 왕권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것을 보고 탐탁지 않게 여기며 후일을 기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 수양과 셋째 아들 안평에게 야심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부왕 세종대왕은 수양과 안평을 궐 근처에서 떨어져 있게 했습니다.

세종 자신의 생각도 통념적인 종법대로 적자로서 왕위를 계승시켜 왕위 계승의 올바른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양의 야심을 경계하면서도 수양이 왕위에 오르리라는 생각은 불가능하리라 확신했고, 세조의 형인 문종도 모든 면에 있어 군주로서의 능력을 십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종은 체력,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세종 자신도 소갈증과 눈병, 고혈압을 비롯한 질환에 시달려 건강이 좋지 않고, 좀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문종에게 섭정을 하게 하여 왕위계승을 둘러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부왕 세종은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신주원, 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에게 어린 원손을 보필하라는 당부를 여러번 거듭하였습니다.

 

저작 활동

 

수양대군이 야심이 있다는 소문이 문종 즉위 초부터 확산됨에 따라 그는 철저하게 자신은 왕위에 뜻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계속 명나라와 인도에서 불서들을 수입하여 탐독하였고, 매사냥과 활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수양대군은 세종의 병약함을 기회로 일부 국정전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철저히 숨겼고, 정치보다는 학문과 서적 간행에 힘쓰면서 인맥을 형성하고 정치를 하려는 기회를 노렸습니다. 이때에 그는 한명회, 권람을 알게 되고 그들로부터 뒤에 신숙주, 정인지 등의 인재들을 포섭하게 된다. 대군으로 있으면서 그는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를 설치하여 도제조(都提調)가 되어 토지제도의 재개혁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치평요람 治平要覽·역대병요 歷代兵要·의주상정 儀註詳定등의 책을 찬술했고 중국의 운회 韻會를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그는 집현전의 학사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집현전 학사들 중 일부는 안평대군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숙주와 정인지 등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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