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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태종 (2)

by fdadfasdf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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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왕자의 난

 

하지만 형제들 간에 다시 한번 분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방원의 넷째 형인 회안대군 방간이 박포의 꼬드김에 넘어가 왕위에 오를 목적으로 1400년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이때에도 이화·이천우 등이 그를 도왔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장수들과 병사들을 가지고 있던 이방원은 쉽게 이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박포 등을 처형하고 회안대군 부자를 황해도 토산으로 귀양 보냈습니다.. 이때에도 회안대군을 죽여야 된다는 여론이 나왔으나 그를 유배시키는 선에서 불문에 부쳤습니다.

그해 음력 2월에 정종으로부터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책봉된 지 9개월 만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습니다. 이후 1401년 음력 612, 명나라로부터 권지고려국사가 아닌 조선 국왕으로 책봉받았습니다

 

사병 혁파와 법령 개정

 

태종은 조선 초기의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관제 개혁을 통한 왕권 강화와 유교 정치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사병을 혁파하여 병권을 일원화하고, 중앙 제도와 지방 제도를 새로이 정비하여 고려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의흥부(義興府)를 폐지하여 병조의 지휘권을 확정하는 등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국방력을 강화했습니다. 토지 제도와 조세 제도의 정비를 통하여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켜 나갔습니다. 척불숭유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사찰을 정리하고 사 원 전을 몰수하였습니다. 또한 호패법·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을 실시했으며, 국방에도 힘써 야인을 다스리는 등 국가 기강을 안정시켰습니다. 사병 혁파로 고려 이래 각 지역의 실권자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는 사병 조직은 사라졌으며, 이들은 농부가 되거나 군역에 편입되었습니다.

 

관제 개정과 신문고 설치

 

태종 대에는 모두 4차례에 걸쳐 관제 개혁이 시행되었습니다. 태조 대 정도전이 설정한 제도 방향성을 권근과 하륜 등이 수정하여 국왕-의정부-육조-언관 체제가 이 시기 자리를 잡았습니다. 태종 146조 직계제를 통해 의정부와 6조의 관료들이 왕에게 직속되어 정무를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관료들을 잘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려 말기에 10년간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관료들이 어떤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태종은 1402(태종 2)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또 정적을 색출하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한양으로 다시 옮기는 등 국가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주자소를 세워 동활자를 제작했고, 호포(戶布)를 폐지하고 저화(楮貨)를 발행했습니다.

 

공신 숙청

 

태종은 왕권의 안정과 강화를 위해 자신을 등극하게 만들어준 공신들을 유배 보내거나 처형했습니다. 이러한 태종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 당대와 다음인 세종 때에는 조선이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군사적 발전을 이루게 될 수 있었습니다. 태종은 먼저 개국공신이자 자신의 옹립에 공을 세운 이거이 부자를 유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공신이자 오른팔이었던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 이숙번(李叔蕃)을 유배보낸 뒤 '사후 백여년간 도성출입을 금지'하라는 금족령을 내렸습니다.

원경왕후의 아버지이며 태종의 장인 민제는 개국 공신이었고, 그의 네명의 처남 민무구와 민무질, 민무휼과 민무회 등은 모두 제1, 2차 왕자의 난 당시 태종을 도와 그를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장인 민제의 가문이 외척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세자인 양녕대군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인물들이 결집하자 장인과 처남들을 과감하게 제거합니다. 장인 민제는 곧 병사했고, 장인의 죽음과 동시에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를 유배했다가 사사케 하고, 이후 민무휼과 민무회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의 처가는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1405년 태종은 권근의 주청을 받아들여 정몽주에게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 전대제학 감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을 추증했습니다. 본인이 제거한 사람을 영의정에 추증함으로써 자신의 포용력을 대외에 과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서적 간행

 

1403년 태종은 주자소의 설치를 명하여 계미자(癸未字) 활판을 제작하게 했으며 직접 이를 감독했습니다. 14042월에는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으나 이 사실을 사관에게 기록하지 말것을 명령한 사실까지 실록에 기록되었습니다.

1413년에는 즉위 이후에 추진한 일을 총괄하여 '경제육전'으로 재편찬하였고, 원집상절(元集詳節)과 속집상절 (續集詳節) 2권을 간행하였습니다. 1414년에는 정도전이 편찬하려다가 중단한 고려사의 편찬 작업을 조준, 권근, 하륜 등에게 명하여 계속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권근과 하륜에게는 삼국사도 새로이 편찬하도록 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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