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역사40 세조 (5) 불교에 귀의 말년의 세조는 심한 악몽에 시달렸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악몽과 악몽으로 인한 불면증을 계기로, 세조는 불교에 귀의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시중에는 그의 아들 의경세자가 낮잠을 자다가 가위눌림으로 죽은 것도, 현덕왕후의 원혼이 죽인 것이라는 낭설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세조는 오래 악몽에 시달렸고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그의 불교 귀의는 유교 성리학을 국교로 하는 조선의 국가 이념, 개국 이념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불교 귀의에 항의하여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 학자들과, 훈구 유학자들은 연명 상소와 사퇴 등으로 항의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으나, 세조의 만류로 무마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건국 당시 금지한 불교 금지령을 완화시켜 양반 사대부들 중에도 불자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세.. 2024. 3. 6. 세조 (4) 서적 간행 지원 세종 사후 세조 때 다시 활판 인쇄술이 활기를 띠고 서적의 보급이 재확산되는데, 활자를 주조, 보급하여 활판 인쇄와 서적 출간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출판 사업 중에는 법화경> 금강경> 등 대장경을 인쇄하여 유포함으로써 불교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하였습니다.또한 역사 관련 서적을 편찬, 재간행, 중수하고 이를 반포하여 사대부와 일반 백성들에게도 필독을 권고하여 국가의식, 민족의식을 고양시켰습니다. 〈국조보감 國朝寶鑑〉의 편수, 〈동국통감 東國通鑑〉의 편찬, 〈경제육전 經濟六典〉의 정비 등의 일련의 편수·편찬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밖에도 〈동국지도 東國地圖〉·〈해동성씨록 海東姓氏錄〉·〈주역구결 周易口訣〉·〈대명률강해 大明律講解〉·〈금강경언해 金剛經諺解〉· 〈오륜록 五倫錄〉·〈.. 2024. 3. 6. 세조 (3) 두 번의 단종 복위 사건과 대숙청 1453년 10월 25일 함길도 종성에서 일어난 이징옥의 난이 발생했으나 부하들이 이징옥을 배신하는 내분으로 쉽게 토벌했습니다.1456년 2월 단종을 복위시킬 목적으로 성삼문 등이 거사를 도모하다가 세조의 측근인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밀고로 일망타진되었습니다.세조가 즉위한 이듬해 (1456년) (1456년)에 성삼문·박팽년·유성원·하위지·이개·김문기 등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과 유응부, 서우승 무인들은 연회 때 별운검을 설치한 뒤 세조 33 부자를 제거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담자의 한 명인 김질이 자신의 장인 정창손에게 이를 말하고, 정창손의 설득에 의해 사육신의 정변 기도를 폭로합니다. 1456년 6월 성삼문 등이 단종의 .. 2024. 3. 6. 세조 (2) 집권 과정 왕족, 훈신들의 위기의식 그는 보통의 왕자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종이 병약했고, 후사(단종)도 나이가 어렸습니다. 세종 자신도 병중인 데다가,, 문종은 부왕보다도 더 병약하여 요절할 우려도 있었습니다. 세종은 일찍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하여 왕위계승을 둘러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세종은 또, 자신이 죽고 세자 역시 오래 못 갈 것을 예상하고 집현전의 학사들에게 어린 세손의 보필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이를 기회로 여기게 되었습니다.1450년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1452년(문종 2년) 4월 관습 도감 도제조(慣習都監都提調)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야심을 철저히 숨기고 불사 중창과 법회에 참석하는 등 자신의 뜻을 철저히 감추었습니다. .. 2024. 3. 6.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 728x90 반응형